역사 속 공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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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 속 인물 소개입니다
서희(942-998)
고려의 외교가, 문신
서희는 960년 과거에 급제한 뒤, 한동안 외교적으로 단절되어 있던 송(宋)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송태조로부터 검교 병부상서의 벼슬을 받는 등 외교관계 회복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972년)
특히 993년 거란이 고려를 침략했을 당시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철수시킨 고려의 문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중국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시켜 송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서경 이북을 거란에 내주고 화해하자는 주장이 지배적이었으나, 서희는 항전을 주창하였다.
전쟁에 직면한 당시 고려는 왕과 신하들 간의 활발한 회의를 통해 국론을 결정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국가적 분위기에서 서희의 의견이 채택되었고 서희는 협상의 전문가로서 꽃필 수 있었다.
소손녕이 서희에게 말하기를 “그대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 고려가 침입하였고, 또 우리와 국경을 접하였는데도 바다를 넘어 송을 섬기므로 오늘의 출병이 있게 된 것이다.” 라고 하자 서희가 말하기를 "아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 그러므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으니, 만일 국경을 논한다면 그대 나라의 동경은 다 우리 경내에 있거늘 어찌 침식이라 하리오? 그리고 압록강의 안팎 역시 우리 영토 내에 있는데, 여진이 도적질하여 차지하고 있다. 만일 여진을 내고 우리의 옛 영토로 만들어 성을 쌓고 도로를 통하게 되면, 어찌 관계를 맺지 않겠는가?" (고려사)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서희는 소손녕의 군대가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는 데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약소국이지만 강대국 사이에서의 전략적 이점을 활용하였다.
결국 그는 소손녕과의 담판을 통해 병력을 철수시키고, 또한 여진이 지배하던 강동 6주(지금의 평북 일대)를 고려의 영토로서 완전히 회복하게 된다.
특히 영토 확장을 넘어 고려가 거란 중심으로 형성되던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중요함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동북아 정세는 우리에게 서희와 같은 협상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동북공정과 영토분쟁 및 북한에 대한 태도 등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일본과의 갈등과 상호 대립 속에서 견제와 균형 및 협력을 통해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한국의 미래를 열어가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협상력은 공직자에게도 필수적인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상황 판단과 국제정세의 변화와 흐름을 읽는 정세 인식 및 협상의 기술 등은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 공무원에게 훌륭한 귀감이 될 것이다.
서희(942~998) 고려의 외교가,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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